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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sungzu

[김성주 더봄] 귀농·귀촌의 시작 가족 동의 (여성경제신문 2022.06.11)

[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섣부른 귀농·귀촌은 가정 불화 불러 가족 행복이 최우선 목표 명심해야

귀농귀촌이라는 말은 이제 생소하지 않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귀농귀촌에 도전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귀농귀촌은 나와 맞지 않다고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많다.

역시나 귀농귀촌도 준비한 만큼 성공한다. 또한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만만치 않은 것이 귀농·귀촌이었다. 섣불리 결행했다가 후회하는 이들도 많이 만나 보았다. 귀농귀촌 농장들을 살펴보니 오랫동안 준비하고 실천하고, 가족이 함께 의사결정하고 함께 준비하고 움직였을 때 성공했다.

필자는 도시 사람이다. 직장 생활을 오래 했다. 에버랜드가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다. 테마파크에서 근무하던 필자가 농촌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직장에서 차장이었던 어느 날. 회사에서 갑자기 경상북도 고령의 어느 마을로 출장을 가란다. 자매결연을 하기로 했으니까 먼저 살펴보고 도울 것이 있으면 잘 도와주고 오란다. 그래서 이게 뭔일인가 싶어서 고령으로 내려가니 그곳은 한옥들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 마을이었다. 이름이 개실마을이란다. 촌스러운면서도 고운 이름에 좋은 첫인상을 갖고 마을의 어르신들과 마주하고 종손댁 사랑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비가 내렸다. 잠깐의 소나기여서 이내 그쳤지만, 사랑채의 처마 밑으로 물이 또로록 떨어졌다. 너무 아름다웠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서울 촌놈이 농촌 마을에서 경험한 그 빗줄기 때문에 농촌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농촌은 도시에서 볼 수 없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내게는 농촌 마을이 아름다운 테마파크였다. 그래서 귀농·귀촌을 결심했다. 벌써 17년 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귀농귀촌은 못했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는 반농반도의 생활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필자처럼 농촌이나 어촌에서 경험한 아름다운 기억을 잊지 못해 ‘나는 원래 체질이 농촌인가 봐’라며 땅부터 사고 집을 짓고 귀농·귀촌을 지른다. 그리고는 후회한다. 막상 시골 살이를 하니 많이 힘들기 때문이다. 혼자 내려온 이도 많다. 버티기 힘들다.


금노래마당 농장 전경. /사진=김성주

전라북도 김제 금산면의 ‘금모래 농장’의 주인 부부는 서울에서 통신 관련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정년을 앞두고 고향으로 귀농했다.

남편이 먼저 귀농귀촌을 결심했다. 이유는 어릴적 살던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였다. 나이가 드니까 서울보다는 역시 시골 고향이 그렇게 그리워졌단다.

남편인 조성천 씨에게 귀농귀촌을 결심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그는 아내와 상의한 것이 가장 먼저 한 일이라고 대답하였다. 아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귀농귀촌을 포기하려고 했단다. 도시에서만 생활했던 아내는 아파트 생활이 더 편할 만도 한데 선뜻 동의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재미있게 살고 있단다.

가족이 동의해주니 힘이 솟았다. 이사 갈 집 상태를 알아보고 집 수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고, 농사짓는 법을 배웠다. 미리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에 가서 교육도 받았다. 직장에서 건설 관련 일을 했기 때문에 어릴 적 살던 집을 개조하는 것은 다행히 쉬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집 때문에 애를 먹는다.

아내는 도시에서만 생활했던지라 시골 생활이 낯설어서 적응할 수 있을까 염려했다. 워낙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아내는 텃밭을 정원으로 생각하며 잘 적응해 냈다.

지금은 조그만 과수원을 일구고 카페와 교육장을 지어 농촌 체험 농장으로 자리잡았다. 얼마전에는 치유 농업 워크숍을 직접 농장에서 개최했다.


금노래마당 농장. /사진=김성주


금모래마당 농장은 10년을 준비하고 정착했다. 귀농 후 15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그야말로 금모래 위에서 사는 느낌이란다. 무엇보다 행복해하는 아내의 모습에 힘을 얻는단다. 가족의 힘이다.

귀농귀촌은 가족의 동의가 있을 때 힘을 받는다.

필자는 17년째 준비만 하고 있다. 아직 귀농·귀촌을 못했다. 가족들은 동의를 하지만 여러 사정이 생겨 실행을 못하고 있다.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녹록지 않은 것이 귀농귀촌이다.

섣불리 실행했다가 후회하는 이들도 많이 만나 보았다. 가족들이 동의를 하지 않아 혼자 산골로 내려가 자연인처럼 사는 사람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아무리 농촌살이가 좋아도 혼자 누리려니 재미없다고 말한다. 물론 가족이 없이 혼자 사는 분들이야 마음 편히 움직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배우자, 부모, 자식들이 엮어 있어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부부가 함께 귀농귀촌 교육을 받으러 오는 것을 많이 보았다.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함께 공부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필자는 아직도 빗소리가 좋은 지역을 알아보고 있다. 17년째다. 그렇지만 빨리 가는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제대로 방향을 잡고 가는 게 중요하다. 앞서 소개한 ‘금모래 마당’처럼 오랫동안 준비하고 실천하고, 가족이 함께 의사결정하고 함께 준비하고 움직인다면 성공한다. 여기서 성공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닌 행복해지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절반은 도시에서 절반은 농촌에서 일하고 있으니 스스로 반농반도(半農半都) 라고 칭한다. 반퇴(半退) 시대의 반농반촌. 준비한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정착한다. 앞으로 귀농귀촌으로 행복해지는 이야기를 계속 전해 드리겠다. 기대하시라.


여성경제신문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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