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김성주 더봄] 생태계에서 배우는 명절 스트레스에서 유쾌하게 살아남는 법

  • 작성자 사진: sungzu
    sungzu
  • 7시간 전
  • 3분 분량

[김성주의 에코테인먼트]

침입종 잔소리를 탐조자 시선으로 넘겨라

카피바라처럼 무심하게, 새처럼 고요하게

잔소리를 탐조로, 명절 식탁을 관찰 숲으로


설날이 다가왔다. 누구에는 행복한 명절이지만 누구에게는 번거롭고 불편하다. 명절은 분명히 반가운 얼굴들이 모이는 자리이지만 생태학적으로 보면 서로 다른 서식지에서 살던 종들이 좁은 공간에 밀집되는 '밀도 스트레스'의 현장이기도 하다.

평소에는 적정 거리(Social Distance)를 유지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이들이 갑자기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좁은 거실에 모여 앉게 된다. 여기부터 문제다. 야생에서처럼 영역 침범과 서식지 간섭이 일어난다.

"연봉은 얼마니?" "그래 결혼은 언제 하니?" 같은 말들은 단순한 안부가 아니다. 상대의 내면이라는 서식지를 무단 점거하려는 침입종의 공격과 닮아 있다.

 

카피바라는 남아메리카 아마존에 사는 거대한 설치류다. 아마존 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가, 습지, 그리고 수풀이 우거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카피바라는 물을 좋아하며 수영 능력이 뛰어나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사진/김성주
카피바라는 남아메리카 아마존에 사는 거대한 설치류다. 아마존 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가, 습지, 그리고 수풀이 우거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카피바라는 물을 좋아하며 수영 능력이 뛰어나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사진/김성주

영역 침범의 스트레스 카피바라처럼 무심하게

이런 명절의 불편함 속에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카피바라(Capybara)의 철학이다.

카피바라는 남아메리카 아마존에 사는 거대한 설치류다. 아마존 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가, 습지, 그리고 수풀이 우거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카피바라는 물을 좋아하며 수영 능력이 뛰어나 물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긴다.

특이하게도 카피바라는 원숭이, 악어, 심지어 거북이와도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쬔다. 카피바라의 등 위에는 새들이 앉아 털 사이에서 곤충을 잡아먹는다. 덕분에 카피바라는 몸을 청소해서 개운하다고 새들이 쫑알대는 사이에서도 느긋하게 쉬고 있다.

카피바라와 거북이는 특별한 관계이다. 둘 다 느긋한 성격이다 보니 자연에서 마주쳐도 아무 일 없는 듯 서로 나란히 앉아 평화롭게 시간을 보낸다.

원숭이조차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 원숭이는 놀이터인 양 카피바라의 몸을 타고 다니지만 카피바라는 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원숭이 덕에 주변에 방해하는 것들이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그냥 느긋하게 앉아 있다.

필자가 카피바라를 처음 목격한 것은 8년 전 일본 치바현의 마더목장이었다. 쥐인지 개인지 사각형 블록처럼 생긴 아이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가가서 만져도 가만히 있었고 옆에서 돼지가 알짱거려도 미동도 없었다.

뭐 이런 동물이 다 있나 싶었지만 그냥 거기서 원래 있던 가구 마냥 있는데 이상하게 평화로워 보였다. 다른 동물들과 평화롭게 지내는 카피바라의 비결은 압도적인 친화력이 아니라 어떤 자극에도 동요하지 않는 '생태적 무심함'에 있다.


침묵의 환대 허시피탈리티와 탐조자의 시선

상대가 어떤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도 카피바라처럼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해 보자. 그것이 명절이라는 생태계에서 내 마음속의 숲을 지켜내는 첫 번째 기술이다. 일단 카피바라처럼 무심하게 있어 보자. 

만약 카피바라의 무심함으로도 견디기 힘들다면 새들의 '허시피탈리티(Hushpitality)'를 도입해 볼 필요가 있다. 허시피탈리티는 침묵(Hush)과 환대(Hospitality)를 결합한 것으로 직역하면 '조용한 환대' 정도 되겠지만 실제 의미는 '침묵을 판매하는 산업'을 말한다.

복잡한 세상으로부터 단절되어 고요함 속에서 치유받는 관광 트렌드다. 요즘에는 번잡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용한 은신처를 찾아 휴식하고 힐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새들은 폭풍우가 치거나 위협이 느껴지면 숲 깊은 곳 자신만의 비상 은신처로 숨어든다. 명절 대화의 수위가 높아질 때 잠시 화장실로 피신해 차가운 물로 손을 씻거나 창밖의 나무를 3분간 응시해 보자. 도피가 아니라 침묵을 즐기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만의 작은 허시피탈리티가 된다.

그래도 못 견디겠다 싶으면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이 있다. 대화의 상대를 인간이 아닌 관찰 대상으로 치환해 보자. 명절 식탁을 하나의 거대한 탐조대라 생각하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친척을 '목청 좋은 직박구리'나 '영역 주장이 강한 텃새'로 생각한다.

"저 종은 올해도 번식과 먹이 활동에 관심이 아주 많군." 그렇게 탐조자의 시선으로 한발 물러나 바라보면 날카로웠던 말들은 어느새 자연의 소음처럼 멀어진다.


풍경이 되는 지혜 갯벌 저어새가 주는 위로

진정한 에코테인먼트는 단순히 동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풍경으로 남는 모습에서 완성된다. 내가 먼저 울타리가 되어주거나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기를 선택할 때 명절의 소란함은 비로소 고요한 숲의 소리로 변한다.

설 연휴가 지났어도 마음의 요동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새들의 영토로 잠시 망명을 떠나보자. 철원 평야의 두루미는 '사는 게 다 그렇지'라는 듯 의연한 날갯짓으로 소란했던 마음을 꾸짖고 고성의 독수리는 덩치값 못하는 순진한 소의 눈망울로 우리를 무장해제시킨다.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세상 순한 표정을 짓는 그들 앞에서 인간들의 다툼은 금세 머쓱해진다. 압권은 강화도의 저어새다. 얼어붙은 갯벌 위에서 길쭉한 주걱 같은 부리를 좌우로 사정없이 휘저으며 '밥벌이의 고단함'을 예술로 승화시킨다.

저어새는 영문명조차 스푼빌(spoonbill)이다. 젓가락질이라기엔 너무나 역동적이고 주걱질이라기엔 더없이 우아한 그들의 갯벌 스윙을 보고 있으면 명절 내내 쌓인 가슴 속 응어리도 시원하게 쓸려 내려갈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시 카피바라를 떠올려 보자. 새들이 등 위에서 쫑알거리고 원숭이가 몸을 타고 놀아도 미동조차 하지 않던 그 평화로운 덩어리.

명절이 끝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도 결국 카피바라처럼 제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다. 다만 이제는 안다. 그 자리가 무심함이 아니라 지혜였음을, 무반응이 아니라 평화였음을. 올해 명절 당신도 카피바라가 되어보시길,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카피바라가 되어 주시길 바란다.


☞허시피탈리티(Hushpitality)=침묵(Hush)과 환대(Hospitality)의 합성어다. 소음과 과잉 연결에서 벗어나 고요한 환경에서 휴식과 치유를 얻으려는 최신 관광 및 서비스 트렌드를 의미한다.


여성경제신문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댓글


  • Grey Facebook Icon
  • Grey Instagram Icon
  • 네이버블로그
  • %E1%84%8C%E1%85%A1%E1%84%89%E1%85%A1%E1%

SLOWVILLAGE

서울시 동대문구 망우로 56 이엔제이빌딩 5층

Tel : 02-966-2843

email : sungzu@naver.com

© 2020 Slowvillage. All rights reserved.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