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닭의 해라지만 정작 닭들은 수난의 연속이다. 연초에 유행했던 조류인플루엔자로 수많은 닭이 살처분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아 무수히 죽어 나갔다. 덕분에 계란이 귀해지고 급기야 30개들이 한 판에 1만원이 넘어가 많은 주부가 한숨을 쉬었다.
경기도 이천에 돼지박물관 세운 양돈업자 이종영씨 전북 김제서 닭 400마리 자식처럼 키우는 이명희씨
계란과 닭에서 모두 DDT(디클로로디페닐트라클로로에탄) 성분이 검출됐던 경북 영천의 토종닭 사육농장에서 닭 폐기작업에 동원된 인부들이 닭을 생포해 포대에 집어넣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여름이 되자 잠잠해지나 싶더니 이번엔 살충제가 묻는 계란이 유럽에 등장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도 조사를 해 보니 꽤 많은 계란에서 살충제가 묻어 나왔다. 닭의 피를 빨아 먹는 진드기를 없애느라 살충제를 썼는데, 그게 사용해서는 안 되는 약품이었다. 수많은 알이 땅에 묻혔고, 소비자는 망연자실해 계란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이제 한 판에 4000원이어도 사람들이 안 산다.
많은 은퇴자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좋은 공기 속에서 좋은 먹거리를 즐기며 건강해지고 싶어서다. 수십 년을 도시에서 매캐한 공기를 마셔대며 출·퇴근을 반복했다. 직장에서도 좁은 닭장 같은 사무실이나 작업장에서 종일 몸과 머리를 쓰며 일했다. 은퇴해서는 진정 넓은 전원을 품에 안은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인간이 자초한 살충제 계란 파동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돼지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뤄진다. 귀여운 미니피그의 공연을 보고 돼지를 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사진 김성주]
경기도 이천의 돼지박물관은 서울과 경기도의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다. 귀여운 미니피그의 공연을 보고, 돼지와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돼지박물관 이종영 대표는 평생 양돈업계에 종사하다가 인간을 위해 희생당하는 돼지에게 너무 미안해서 더 이상 도축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박물관을 지었다.
아이들에게 가축의 의미를 알려 주고, 인간을 위해 희생하는 돼지를 기리기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 제공하고 있다. 적어도 돼지박물관을 거쳐 간 아이들은 삼겹살을 먹을 때 마다 돼지에게 고마워한단다.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돼지박물관에서는 다양한 체험활동이 이뤄진다. 귀여운 미니피그의 공연을 보고 돼지를 안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사진 김성주]
전북 김제의 사랑골 농장 이명희 대표의 남편은 음악교사로 지내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분이다. 지금은 은퇴해서 심심풀이로 닭을 키우는데 무려 400마리다. 이 대표가 고기를 안 좋아해 닭을 잡지 않은 덕분에 닭이 살판났다. 그 많은 닭을 넓은 마당에 풀어 놓고 사료 먹이는 것이 하루 일과다.
닭을 치느라 고생스러워도 닭이 행복해 하는 것 같아 너무 좋단다. 게다가 싱싱한 계란이 넘쳐나니 이웃에게 인심도 쓸 수 있다. 조류독감이니 살충제 계란은 상상도 못해 봤단다. 닭, 오리, 거위가 마당에서 자기를 졸졸 쫓아 다니니 애 키우는 기분도 든단다. 이 두 농가의 공통점은 좋은 먹거리를 스스로 만들어 먹고 가축한테 미안해 한다는 것이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장에서 계란을 폐기하는 모습. [중앙포토]
살충제 계란 파동을 보며 씁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인간이 자초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값싸게 음식물을 공급받기 위해 만든 대량 생산 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다.
좁은 공간에서 그저 숨만 쉬다가 살이 쪄 도축당하는 돼지·닭·소·오리 같은 가축은 죄가 없다. 인간의 먹이가 되기 위해 사육당하다가 죽어 가는 생명체에게 인간은 미안해하기는 커녕 더럽다고 말한다.
돼지는 양지바른 곳에 집을 짓고 스스로 화장실을 만들어 용변을 보고 주둥이로 땅을 파서 빗물을 받아 목욕하고 일광욕을 즐기는 매우 청결한 동물이다. 인간은 돼지가 밥 먹고 똥 싸는 곳을 한 우리에 만들어 놓고 키우면서 더럽다고 말한다. 정작 돼지는 깨끗하게 사는 동물인데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 놓고는 말이다.
돼지는 매우 청결한 동물이다. [사진 김성주]
닭장도 마찬가지다.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몰아 놓고는 한달 정도 키우다가 잡아 먹는다. 계란을 낳는 산란계는 그나마 오래 사는데 그래 봐야 고작 2년이 안된다. 1년 가량 알을 낳다가 더 이상 달걀을 낳지 못하면 폐닭이라고 낙인찍고는 폐기처분해 버린다.
우리가 매 끼니 먹는 쌀은 인간이 먹기 위해 개량한 품종이다. 밭에서 자라던 것을 논으로 옮겨 수경재배에 성공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주식이 된 것이다. 곡식은 물에서 자라면 독성을 품게 돼 먹기가 곤란해지는데, 물에서도 잘 자라게 개량한 것이다.
우리가 즐겨먹는 깻잎도 알고 보면 하우스 안에 밤새 조명을 켜 놓고 꽃을 못 피우게 해 잎의 크기를 키워 놓는 것이다. 꽃을 피우면 깻잎이 더 이상 크지 않기 때문이다. 좀 큰 것을 먹겠다고 잠 안 재우고 괴롭히는 것은 아닌지. 이쯤되면 정말 미안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농사란 원래 이런 것인가.
부메랑된 자연파괴와 동물학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의 한 산란계 농장에서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품질관리원 검사요원들이 시료채취를 위해 계란을 수거하고 있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농부는 잘 안다. 인간이 살기 위해 식물과 동물이 희생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한다. 풀과 벌레를 없애느라 농약을 치는 동안, 진드기 없애느라 살충제를 뿌리는 동안 농부들 자신이 약품에 먼저 중독돼 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생산자만 원망해야 할 상황도 아니다. 소비자의 배를 채우려면 대량생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잘못된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유기농으로 어렵게 농사짓는 농부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농약을 안 치니 당연히 채소의 겉면이 푸석푸석해 보이고 벌레가 들어 구멍이 나게 된다. 모양이 안 좋다고 팔리지 않으니 속상하다. 약을 쳐서 반짝반짝 빛나는 채소는 신선해 보인다고 잘 팔리니 어쩔 도리가 없다.
친환경농산물. [중앙포토]
은퇴 후 귀농·귀촌한 사람들은 대체로 소량으로 농산물을 생산해 자신들이 먹거나 소규모로 판매하기 때문에 화학농약을 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농부의 생계 때문에, 소비자의 잘못된 인식 때문에 유기농법을 버리고 농약을 쳐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다. .
인간은 살기 위해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 농사를 짓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배부르게 먹어 보겠다며 대량생산하는 과정에서 자연이 파괴되고 생물이 학대를 당한다. 이런 가운데 그 폐해는 부메랑이 돼 인간에게 돌아오고 있다.
한 어르신이 그동안 그렇게 살충제 친 계란을 먹었어도 끄덕없었으니 괜찮다고 말씀 하신다. “아닙니다. 어르신. 이제는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먹기 위해 살지만 제대로 먹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sungzu@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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