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의 귀농귀촌 이야기] 드라마 속 농촌 생활 진짜일까? 그래도 드라마 같은 생활은 전원 속에
설을 조용히 지내고 나니 지금은 더 조용하다. 한가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농촌 생활을 하면서 겨울만큼은 제대로 쉬어 보는 게 혜택이면 혜택이고 사치면 사치라고 생각하기에 더더욱 방 안에 늘어져 본다.
일찌감치 우리 선조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간 쉬도록 정해 놓으셨다. 이 축제 기간 우리 선조는 레저와 스포츠를 철저히 즐기셨다. 정월대보름날 밤에 즐기는 쥐불놀이 /게티이미지뱅크
한 해 농사를 지으려면 일찍부터 부지런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다. 일년내내 일만 하면 죽는다. 일찌감치 우리 선조는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간 쉬도록 정해 놓으셨다.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15일간 공식적인 축제 기간이자 휴무 기간이다. 축제 기간 우리 선조는 레저와 스포츠를 철저히 즐기셨다. 제기차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쥐불놀이, 줄다리기부터 달집태우기, 더위팔기, 달맞이, 복토 훔치기, 액막이, 다리밟기까지 한겨울을 후끈하게 보내셨다.
이때다 싶었는지 여러 가지 해 드셨다. 부럼과 오곡밥, 진채, 귀밝이술, 팥죽, 약밥은 이때 먹는 음식들이다. 귀밝이술이 참 재미있다. 이른 아침 부럼을 깨면서 동시에 차가운 술을 마신다. 그러면 귀가 밝아지고 귓병을 막아주고 한 해 동안 좋은 소식만 듣는단다. 얼마나 좋은 풍습인가.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청도 도주줄당기기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그러나 그것도 누가 같이 놀아주고 먹어줘야 하는 거다. 그래서 요즈음은 그냥 방 안에 있다. 오직 TV리모컨만 붙들고 논다. 그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왜냐하면 드라마가 있으니 말이다.
채널을 돌리다 보니 ‘전원일기’를 하루 종일 틀어주는 곳이 있었다.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해서 열심히 보았다. 역시 농촌 드라마는 ‘전원일기’이다.
전형적인 농촌의 일상을 그렸다. 방송 시작할 때 나오는 색소폰 소리는 지금도 농촌을 상징하는 시그널 뮤직이다. 최불암, 김혜자부터 김수미, 김용건, 고두심, 유인촌까지 대단한 라인업이다. 이 드라마는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방영되었으니 무려 22년을 이어갔다. 마침 ‘전원일기’를 회상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요즈음 방영되고 있다. 별세한 박윤배 씨가 디지털로 복원되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전원일기’를 보니 재미있다. 마을 사람들끼리 얼마나 지지고 볶고 싸우는지 모른다. 가족 간 갈등과 주민 간 갈등이 매회 나온다. 외지인들이 나타난 사달이 생기는 것은 덤이다. 그냥 드라마 시청자가 아닌 농촌 전문가로서 에피소드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돈’과 ‘관계’에 미숙한 양촌리 사람들의 갈등이 1000회를 넘도록 이어진다. 지금 농촌 현실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전형적인 농촌의 일상을 그린 MBC '전원일기' 한 장면. 이 드라마는 1980년 10월 21일부터 2002년 12월 29일까지 무려 22년을 이어갔다. /방송 화면 캡처
‘전원일기’가 MBC라면 KBS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대표적인 농촌 드라마다. 이 드라마도 1990년 9월 9일부터 2007년 10월 10일까지 17년을 방영했으니 대단한 장수드라마이다. KBS에는 농촌 드라마가 하나 더 있다. 2007년부터 2012년 정도까지 방영되었던 ‘산 너머 남촌에는’이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후속작이었다. 그때만 해도 농촌 드라마는 공영방송에서 하나 정도는 만들어줬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와 ‘산 너머 남촌에는’에서는 귀농귀촌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외국인 며느리와 외국인 노동자도 다뤘다는 특징이 있다. 분명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발생한 사회현상을 그린 것이다. 그간의 농촌의 변화를 알려면 이런 드라마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KBS는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가 대표적인 농촌 드라마다. 이 드라마도 1990년 9월 9일부터 2007년 10월 10일까지 17년을 방영한 장수 드라마다. /방송 화면 캡처
그간 농촌이 배경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꽤 있었다. 충북 영동의 대표적인 작물인 포도를 다뤘던 ‘포도밭 그 사나이’를 기억하시는가. 윤은혜와 오만석이 주연이었다. 내용이 뭐였냐면, 패션사업을 꿈꾸던 여성이 '1년간 농사를 지으면 1만 평의 포도밭을 물려주겠다'는 당숙의 제안을 받고 농촌으로 내려가 고생고생한다는 이야기이다. 당시에 와인이 유행하는 바람에 드라마도 떴다.
또 ‘모던 파머’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4명의 홍대 출신 록 그룹이 어쩌다가 귀농해서 배추 농사짓는 이야기이다. 시골 처녀로 이하늬가 나오는데 천하장사로 나온다. 지금 봐도 참 코믹하다. 출연자로 이홍기, 이시언, 곽동연이 나오는데 당시 신인이어서 풋풋하다. 지금으로 치면 ‘청년 후계농 드라마’라고 볼 수 있다.
2021년 방영한 ‘라켓소년단’은 감동의 귀농 드라마라고 필자는 인정한다. 시골 중학교 배드민턴단 아이들 이야기인데 귀농귀촌한 도시인들과 마을 사람들의 어우러짐이 매우 따뜻했다. 주역을 맡은 ‘탕준상’ 배우는 아버지가 말레이시아 출신이다. 성이 ‘탕’씨다. 다문화 가정에서 컸는데 연기 천재이다.
2021년 방영한 sbs ‘라켓소년단’은 감동의 귀농 드라마이다. /방송 화면 캡처
예전의 ‘농촌 드라마’는 현실적인 면을 부각해서 표현했다면 최근에는 농촌, 어촌을 배경으로 하는 멜로 드라마가 많아졌다. K-드라마답다. 어차피 우리나라 드라마는 주제가 병원이건 농촌이건 회사건 간에 모두 멜로이다. 메디칼 드라마는 병원에 가서 연애하고, 추리 드라마는 형사끼리 연애하는 거다. 법정 드라마는 검사랑 변호사랑 판사랑 연애한다. 근래에 검사와 변호사 나오는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는 거 아는가. 분기마다 꾸준히 법정 드라마가 나오고 있다.
검사와 변호사의 모습이 부담스러워 잘 보지 않는데 그래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정도면 흐뭇하다. 극 중 ‘우영우’도 고등학교 시절 자폐스펙트럼 증상 때문에 강화도로 귀촌했었다. 그곳에서 평생의 친구 ‘동그라미’를 만난다. 박은빈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농촌이나 어촌을 배경으로 연애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는 배경이 아름답고 좋아서 인기가 꾸준하다. 몇 년 전 특이하게 귀어귀촌을 다룬 드라마가 있었다. ‘톱스타 유백이’이다. 톱스타 배우가 섬 처녀랑 사귀는 내용인데 섬마을 어촌이 배경이고 여배우가 해녀로 나온다. OTT로 볼 수 있어서 얼마 전 또 봤다. 넷플릭스나 왓챠와 같은 OTT 서비스가 없으면 어떻게 사나 싶은 정도이다. 참 고맙다.
예전에 라디오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농촌이 배경이 된 드라마를 보고 나면, 실제로 귀농과 귀촌에 영향을 주는가 하고 질문이 들어 온 적이 있었다. 필자는 드라마가 계기가 되기도 한다고 답하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귀농귀촌을 결심했다는 사람을 진짜 여럿 만나봤다. ‘전원일기’ 보고 왔다는 사람도 있고 ‘라켓소년단’을 보고 귀촌을 결심했다는 사람을 만나 봤다. 다큐멘터리도 영향을 많이 준다. ‘나는 자연인이다’가 대표적이다.
여성들의 경우 ‘타샤의 정원’이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보고 결심했다는 사람을 무척 많이 만났다. ‘타샤 튜더(1915~2008)’는 미국의 동화작가로 평생 자신의 정원 300만 평을 꾸몄다. 그거 따라 한다고 귀촌해서는 텃밭 가꾸고 정원을 많이 꾸민다. 물론 대부분 잡초 뽑다가 3개월 만에 손든다.
농촌이 인구 소멸을 걱정하는 입장에서는 농어촌 드라마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귀농귀촌까지 가지 않더라도 드라마가 성공하면 그 배경이 되는 무대를 직접 보기 위한 관광객도 늘어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온 창원의 팽나무는 지금도 명소이다.
경상북도 예천은 무척 조용한 동네로 용문면이라는 곳에 가면 초간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그곳에서 ‘미스터 선샤인’ 드라마를 잠깐 찍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는지 사람들이 찾아간다.
드라마에 나와서 지역 관광이 뜬 사례로는 영덕 강구항이 최고일 것이다. IMF 금융위기 당시. 어촌에 살던 가족이 서울로 올라와 사는 이야기인데 최불암, 최진실, 박상원, 차인표, 송승헌이 나왔었다. 제목이 ‘그대 그리고 나’이다. 주제가가 ‘Beyond the blue horizon’이었다. 이 노래 나오면 다들 설렜었다. IMF 때라서 다들 힘들 때 드라마가 힘을 줬었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당시에는 영덕대게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는데 드라마로 떴었다.
드라마에 나와서 지역 관광이 뜬 사례로는 영덕 강구항이 최고일 것이다. mbc ‘그대 그리고 나’이다. IMF 때라서 다들 힘들 때 드라마가 힘을 줬었다. /방송 화면 캡처
우리와 비슷한 현실을 지닌 일본도 농촌 주제 드라마가 제법 나온다. ‘한계취락 주식회사’라는 드라마는 고령화 사회에 직면한 농촌이 농촌관광으로 다시 부흥하는 이야기를 그렸고, ‘나폴레옹의 마을’이라는 드라마는 지역의 공무원이 쇠락해가는 지역을 난개발하는 것을 막고 재생 사업하는 내용이 나온다. 뭐랄까 일본 특유의 계몽적인 모습이 좀 거슬리지만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게 흥미롭다. 최근에는 ‘퍼스트 펭귄’을 재미있게 보는데 어촌의 6차산업이 주제이다.
드라마를 한참 이야기하다 보니 농촌에서는 문화콘텐츠를 활용해야 하고 농촌 자체가 문화콘텐츠라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영화 제작사가 필자의 블로그를 보고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블로그에 있는 농장 창고 사진을 보니 창고가 음침한 게 조폭 영화 찍기 딱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창고 주인을 소개해주었다. 문화콘텐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를 자기 농장으로 유치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자기 삶이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서 소개되는 경우도 많다. 책을 쓰는 농부도 많다. 농촌이 문화콘텐츠이고 농부가 문화콘텐츠이다.
농한기에 TV를 끼고 살고 있다. 드라마 보면서 눈물 훔치는 내 모습이 걱정스럽다. 어찌 되었든 드라마는 드라마다. 일부러 안 보는 드라마도 있다. 서울 강남의 사교육 소재와 정치 소재 드라마는 절대 안 본다. 가뜩이나 뉴스 보면 정신 사나운데 드라마까지 그런 날 선 현실을 봐야 할 필요는 없어서이다.
차라리 막장 드라마를 본다. 여러분들도 그냥 드라마 욕하면서 보시라. 그래야 스트레스도 풀고 건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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